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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비야_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호미랑 2010. 7. 12. 08:01

이름 : 다비드 비야 (David Villa Sanchez) 

출생: 1981년 12월 3일 (스페인)

신체: 175cm, 69kg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데뷔: 1999년 스포르팅 히혼

 

자자,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비야.

아버지가 축구광팬이었다죠, 그래서 그런지 태어날 때부터(??), 이건 약간 과장이구요, 여하튼 어린 나이에 볼을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비야가 양발을 모두 쓰게 된 것에는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스페인 북부 아스투리아스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비야는 어렸을 때 오른쪽 넓적다리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의사들은 수술을 권하며 평생 불구가 될수도 있다고 경고했지만, 비야의 부모님들은 수술이라는 위험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깁스를 하며 다행이 치료가 되었지만 오른발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이 때 비야의 아버지는 비야의 왼발 힘을 길러주려고 운동을 계속시켰고, 결과적으로 양발을 자유롭게 쓰게 됐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재활훈련에 힘쓴 그는 몇 년이 지난 후 완치 돼 운동을 하는데 문제가 없게 되었습니다. 유년 시절 그는 자신이 속했던 지역 클럽에서 전력 외 대상으로 구분되고, 14살 때 축구를 그만 두게 됩니다. 이런 그에게 끝없는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준 인물이 바로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에게서 축구에 대한 열정을 다시 찾은 비야였지만 그를 찾는 클럽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17세 때는 어린 시절부터 응원하던 레알 오비에도의 입단테스트를 봤지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해 자신의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루이스 엔리케가 몸담았던 스포르팅히혼에 입단 테스트를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당당히 합격을 통보 받았죠. 이렇게 그는 스포르팅히혼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축구 선수로서의 꿈과 희망을 키워 나가게 됩니다.


비야의 능력이 빛을 보게 된 시점은 2001/2002 시즌이었습니다. 그 해 18골을 쏟아 부은 그는 단숨에 팀의 간판 스트라이커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러한 활약으로 스페인 21세 이하 대표팀에도 선발됩니다. 당시의 21세 이하 대표팀에는 3살 어린 페르난도 토레스를 비롯해 빈센테, 레예스, 알론소, 레이나 등 지금의 스페인 황금기를 구가하게 된 멤버 구성이었습니다.


02/03 시즌부터 20골을 퍼부으며 어엿한 세군다리가(2부 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떠올랐고, 그 해 사라고사로 이적합니다. 이적 후 두 시즌 동안 31골이라는 놀라운 득점력으로 그가 프리메라리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재능을 증명해냈습니다.

그러던 2005년 프리메라리가의 절대 강자 레알, 바르셀로나와 더불어 가장 경쟁력이 넘쳤던 발렌시아에 스카웃되며, 스페인을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로 급부상 했습니다. 데뷔 시즌에만 25골을 쏟아부으며 에투(26골, 인터밀란)에 이어 득점 2위에 오르는 눈부신 활약을 했습니다. 이후에도 2006년 월드컵에서 3골을 넣은 뒤 유로 2008 득점왕에 등극하는 등 국제 무대에서도 빼어난 활약을 선보여 전세계 축구팬들로부터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습니다.


올해, 바르셀로나에 새롭게 둥지를 튼 비야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바르셀로나에서 그의 빛나는 재능이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2010 남아공 월드컵 4강전을 앞두고 5골을 폭발시킨 다비드 비야. 그의 천부적인 골 감각은 어릴 때부터 적응해온 볼에 대한 감각과,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그는 이제 무적함대의 길잡이가 되는 등대와 같은 존재입니다.

스페인 축구팬과 전 세계 축구팬이 지금의 비야의 모습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가 조국 스페인의 사상 첫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안겨 줄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아쉽게 패배의 쓴 잔을 마신다 하더라도, 그가 보여준 열정의 눈물은 절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