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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을 보는 창/한 권의 책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

by 호미랑 2010. 5. 11.

아마도 올해 내가 읽은 책 가운데 어쩌면 몇 년 동안 교사로서 읽은 책 가운데 가장 깊은 울림
을 지니고 있을 책이다. 교사로서, 아버지로서 아이를 볼 때 어떠한 관점에서 봐야하는가를 이
처럼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한 책은 아직까지 없었다. 사범대학을 다니면서 배운 교육학의
지식들, 학교 현장에서 오랜 시간 동안 풀지 못하던 숙제들을 한꺼번에 어떠한 길로 나아갈지
를 가리켜 준 책이다.


ADHD, 흔히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라 불리는 이 질병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이 책은 요즘 세상에서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질문에 대한 대
답도 바로 나온다. 없다는 것이다. 대신 아이들이 보이는 그와 같은 문제들은 사실은 거대 제약
회사들이 돈을 벌어처먹으려는 논리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그 장애에 대한 처방약으로 쓰이
는 리탈린이라는 약이 있는데 이것은 아이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뇌의 일부분에 생화학적 작
용을 함으로써 아이를 멍때리게 만들 뿐이라는 것이다. 이 약이 뇌의 다른 부분에 미치는 영향
에 대하여는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규명된 것이 없다는 것이 글쓴이의 의견이다.


미국국립보건원에서도 ADHD에 대한 학부모, 의사, 제약회사, 학교 사이의 논쟁을 정리하기 위
하여 위원회를 구성하였고, 그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지금까지 밝혀진 ADHD의 원인들은 여전히 추측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따라서 ADHD 예방 전
략은 없다."

이것은 학교에서 쉽게 처방하는 약물치료가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 것으로 다른 치료 방법은 무
엇일까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글쓴이는 뉴욕에 있는 프리스쿨이란 형태의 대안학교 교사
이다. 30년이 넘는 오랜 교사 생활을 통하여 글쓴이가 명명한 대로 약물 치료를 받았거나 약물
치료를 권장 받은 기존 제도권 학교에서 전학을 온 '리탈린파' 아이들을 지도한 경험을 다루고
있다.





교사들은 늘 교실에서 '주의가 산만한.',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아이
들과 부딪친다. 이 책에서는 그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 개성을 찾아가고 학습에 참여하도록 이
끄는 과정이 소개되어  있다.
과연 이 책을 한국 교실에서 적용할 수 있을까? 또한 한국 교사들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이 책은 교사들이 흔히 '적응 장애아', '문제아'라고 꼬리표를 붙이는 아이들에 대하여 그 원인
이 무엇인지를 밝히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아이에게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그 문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정확하게 모르고서야 아이를 판단할 수가 없다. 이 책은 그러한 아이들 하나하
나가 가진 개성과 환경, 특성에 맞게 바라보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서 아이들에게 필
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한국 교사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리탈린파 아이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어서
가 아니다. 글쓴이 역시 자기가 살고 있는 미국의 공교육 공간 속에서 이런 문제를 가진 아이들
을 지도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글쓴이는 공교육이 가진 한계,
그 문제점에 대하여도 분명하게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교사들이 처한 어려움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한국의 교사에게 그 문제에 대한 해결을 제
시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 원인과 해결 방향은 제시하는 셈이다.


부모들에게 이 책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이 책에 보면 아이가 3~4학년이 되도록 글을 깨우
치지 못하는 아이들도 나온다. 과연 아이들에게 언제쯤 글을 배우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주의가 산만한 아이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사례가 대부분
이다. 부모로서 자녀가 공부에 집중하지 않고 딴짓을 하고 장난을 치고 까불고 떠드는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인 사례 하나하나를 통하여 자세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만약 자녀가 학교에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주의가 산만하다는 말을 듣는다면 이 책
을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또한 내 아이는 몇 살 쯤에 국어를 쓰고 읽는 것이 좋을지, 공부
를 시작하기에 나이가 늦지 않았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 권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에서 번역의 매끄러움, 자연스러움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식 말투에 벗어나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구절 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국 사람이 쓴 것
과 별 차이가 없는 표현은 이 글을 매끄럽게 읽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아이들 사례 하나
하나를 상상해가면서 아이들이 부딪힌 문제를 하나하나 재구성하면서 읽기에는 속도가 나지는
않는 책이다. 일반적으로 번역 도서가 글쓴이가 전하고자 하는 분위기나 미묘한 의미를 전하는
데 실패하거나, 말투가 너무 영어식 문법이라 무슨 말인지 애매모호하거나 어색한 경우가 있는
데 이 책을 읽으면서 번역에서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역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