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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을 보는 창/한 권의 책

인간의 벽 _ 石川達三

by 호미랑 2009. 1. 10.


방학을 맞아 앞베란다를 정리하였다. 박스에 쌓여 있던 책들 가운데 더 이상 읽지 않는 책들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 안에서 젊은 시절에 읽었던 책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중 하나 '인간의 벽'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
다.
아마도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며 교직을 준비할 때, 입시교육으로 줄달음치던 당시 현실에 문제 의식
을 느끼고,
그 대안을 고민하던 과정에서 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 대한 기억에는 한 평범한 여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치
다 참교육(진교육)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고, 교육연구대회에 참가해서 교사로서 새롭게 눈
을 뜨게 된다는 내용이 
남아있다.

이 책은 교육에 대한 고민과 방향을 제시하면서도 이야기 구조가 무척 탄탄하여 재미있었다는 기억도 함께
남아
있다. 그래서 방학을 맞아 그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지금 교사가 되어 평소에 일본 교육에 대하
여 궁금하
게 여기던 점, 일본에서 교사들 노동조합은 어떻게 활동하는가 등 궁금한 생각에 다시 읽게 되었
다. 더불어 방학이
라 집에서 있으면서 여유가 나게 되어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뜻밖에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과 내용이 달랐다. 물론 여교사가 중심이고 그 활동
을 중
심으로 사건이 전개되기는 하지만 그 이 소설을 쓴 작가가 작품을 통하여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크게 달랐
던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여교사가 아이들을 인격체로 존중하고 학생이 중심이 되어 수업에 참여하
는 방식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하려는 교육 연구 활동을 통하여 평범한 교사에서 노동조합의 조합원으로서 의
식을 갖춘 교사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지자체에서 교육 예산을 축소하면서 교육이 황폐화되
고, 그런 현실에 분노하
여 싸우다보니 그 뒤에 숨은 자민당 권력이 보이고, 결국 일교조를 죽이려는 국가주의
세력과 싸워나가는 모습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로 읽히게 되는 것이다.

기존에 알고 있던 초등학교 교사로서 교육을 연구하는 활동도 단지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교육이라는 막연한
슬로
건이 아니라 민주교육과 평화 교육이라는 두 가지 명확한 방향성을 정하고 그 안에서 학생들을 하나의 존
중받아야
하는 인격체로 지도하려는 교사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1954년 일본의 소도시에서 한 여교사가 초등학교 5학년생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겪는 이야기이다. 이
는 일본이 2차세계대전에서 패망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함이 계속되던 시절이다. 주인공 교사는 초등학교 교
실에서
일본 지방자치단체 단위인 현(번)에서 예산이 부족하여 교사수를 줄이기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에 대하
여 반발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
다. 그녀 남편은 조합에서 일하는 중견 간부인데 이 남자는 조합 활동을 통하여
사회적인 성공을 지향하는 교사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아이들을 마음으로 사랑하고 아이들 인격에 맞추어 가
르쳐야 한다는 아내 입장에서 결국 둘사
이는 화해하지 못하고 이혼하게 된다. 여교사는 평생 찾지 않던 조합을
방문하여 자기에게 내려온 권고사직을 이
겨내게 되고 그 때부터 '투쟁만을 일삼는 노동조합'이라는 고정관념
을 조금씩 바꾸게 된다. 그 가운데에 함께 일하는 학교 교
무실에는 다양한 교사의 모습이 나타난다. 착실하게
일교조 지부에서 내려온 지침들을 해나가는 분회장 교사, 젊은 교
사로서 잘못된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바로
행동하고 발언하는 신참 교사,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
지만 늘 교육 문제
에 대하여 냉소적이며 주인공이나 분회장에게 딴지 걸기를 좋아하는 교사, 교육청과 학부모회(육성
회)가 요구
하는 것을 옳지 못하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자기 일신을 위하여 끌려다니는 교장.


이 여교사는 자신의 권고사직은 막아내어 싸워 이기지만 현 교육에서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교육위원회는 한
국으로 치면 행정자치부인 자치청에서 현에 예산을 적게 나눠주자 그것을 근거로 교사 감원
계획을 더욱 강하
게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현 교육위원회가 교직원노조 힘이 가장 약한 이곳 현에서 교원을 감원하
려는 의도가 일본 여러 현 가운데
노동조합 조직력이 가장 약한 이곳 지부를 와해하기 위한 것임을 눈치채게
된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권력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세력 일교조를 자민당이 현 교육위원회를 앞세워 지방
에서부터 하나하나 각개격파하겠다는 
정치적인 움직임이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교원을 감원하게 되면 지금
도 한 학급 55명이 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60명도 넘게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되고 이것은 사회적으로
교육이 질적으로 저하될 뿐만 아니라 인간다운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 아이들의 교육권을 침해하데 된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고, 
교육위원회와 싸우기 위해서는 일교조가 왜 정치적인 투쟁을 하지 않을 수 없는가 하
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왜 현 전체 주민들 대부분이 조퇴 투쟁에 반대함에도 이곳 현 교원노조는 조퇴투쟁
을 강행할 수밖에 없는가를 아
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주인공 오자끼 선생은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는 교사이다. 바닷가를 끼고 있는 인구 10만 정도인 이곳 도시에서
녀는 가난함 때문에 학교에 장기 결석을 하는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에 늘 시달린다. 그 중 한 아이가 사는 바
닷가
끝자락 동굴 속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어머니는 떠나 버린 채 물고기를 잡으면서 하루 끼니를 해결해 나가
는 원시
인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학급 학생을 만나고 그를 설득해서 학교에 나오게 한다. 그마저도 아버지
가 다시 그
곳 광산에 취직이 되면서 만난 새어머니와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아이가 장기 결석을 하게 되자 아
버지도 찾기를 포기해
버린 학생을 찾기 위하여 태풍을 뚫고 걸어가며 그 공포 속에서 동굴로 향한다.

아이들 인격, 경제적 수준, 말투와 버릇 등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피고 존중하며 그 수준과 그 형편에 맞게 가
치는 섬세함이 여교사다운 모습으로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또한 4박5일간의 교육 연구 집회에 참석
하여
일본 교육이 처한 어려운 현실에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민주 교육과 평화 교육을 실현할 것인
가 새
롭게 깨달아 가는 모습을 기록문 형태로 장황할 정도로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은 일본교직원노동조합의 역사를 적고 있다. 이 책에는 일교조의 역사, 조직 체계, 정책 결정 과정부터 학
현장 조직인 분회 활동까지 하나하나를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1954년 당시에 일교조에서 교육 연
구집회
를 하면 한 해에 학교 전체 교사 가운데 2/3가 연구 활동에 참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민주교
육과 평화
교육에 대한 교사들의 책임감이 강했던 것이다. 더불어 기록해야 할 것은 나는 막연히 민주교육과
평화 교육이
미국이 일본을 점령하면서부터 미국식 민주주의로 이식되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
보다도 먼저 1930
년대에 이미 일본 자체적으로 현장교사, 교수들이 이 두 가지 교육 방향에 대한 씨앗을 뿌려
왔음을 알려준다. 그
만큼 민주 교육과 평화 헌법의 역사가 길고 그 전통이 일본 대부분 대중 교사들 마음 속
에, 머리 속에 살아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일교조가 일본 자민당 정권의 국가주의 정책을 어떻게 막아내어 평화헌법과 민주주의의 가치가 수호
해나가는지 잘 보여준
다. 일본에서 평범한 국민들이 왜 쉽게 우경화되지 않고, 평화헌법 수정에 동조하지 않
는지 그 이유 한
가지를 보여준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가장 진보적인 세력이 민주당도, 사회당,
공산당도 아닌 일
교조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정치 권력 자민당이 왜 일교조 탄압에
앞장서고, 한국에서
왜 딴나라당부터, 교육과학부, 검찰, 경찰, 조중동 언론이 왜 전교조 죽이기에 앞장서는가,
그 가진자들이 어떻
게 전교조죽이기에 협력하는가 이 책은 예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읽다가 든 느
낌인데 딴나라당 조 아
무개 국회의원이라는 놈부터 교육과학부까지 전교조에 대하여 보여주는 태도가 어쩌면
그렇게도 일본과 똑같
을까라는 점이다. 50년도 전에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 한국에서는 아직도 계속되는 이 막
막한 현실.


한국에서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쳐야 올바른가에 대한 대답 역시 주
공 오자끼 선생이 보여준다는 생각을 하면 일본 사회와 한국 사회이 동질성에 새삼 놀라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