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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재미있을까!/중학생 책

루카스의 긴 여행_ 빌리 페르만

by 호미랑 2008. 10. 9.
루카스의 긴 여행_ 빌리 페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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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독일 작가 빌리 페르만이 쓴 소설이다. 독일 작품이라 하면 지금 40~50대는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 헤르만 헷세 작품으로 한 번쯤 만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데미안, 지와 사랑 등의 작품을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최근에는 헷세가 쓴 수레 바퀴 아래서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 때에도 새삼 묘사가 생생하고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이 너무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작품이 보여주는 시대적 배경이 19세기 말이라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마치 지금 일어난 일처럼 생생한 느낌이 들어서 놀랐다.

주인공 루카스는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고모들과 함께 사는 열네 살 소년이다. 할아버지는 지역에서 소문난 도목수이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떠나서 어디론가 가버렸다. 소설 처음 부분을 보게 되면 사회 시간에 배우는 북유럽의 도제 문화가 아주 잘 나와 있다. 할아버지가 뛰어난 목수이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당연히 아들이 목수가 되기를 바랐다. 할아버지도 이미 3대째 목수를 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루케가 프로이센 각지를 떠도는 방물 장수 나탄 할아버지에게서 아버지의 작품을 찾아내게 된다. 나탄이 갖고 있는 이 팬던트는 어쩌면 독일 서부 항구 단치히 쯤에서 구한 것이고 그렇다면 아버지는 미국으로 떠났을 것이라고 짐작을 한다. 미국이 남북전쟁이 끝나고 나라를 재건하는데 많은 일감이 있을 것이라 짐작한 할아버지는 아들(도망간 루케 아버지)이 남긴 2000탈러란 큰 빚을 갚기 위하여 미국으로 떠나기로 한다.

과연 루케는 드넓은 아메리카 땅에서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루케는 마을에 사랑하는 소녀, 리자 바리히를 마음 속에 잘 간직할 것인가?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하며 프로이센 왕정에 저항하는 루케 학교 선생님 피트는 떠나는데 그가 사랑하는 마틸데는 함께 갈 수 있을까?



이 작품이 주는 즐거움은 무엇일까?
첫째 루케가 가는 마을에 대한 묘사, 여행을 가는 배 위 생활에 대한 묘사, 아메리카 개척지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 글을 꼼꼼하게 읽다 보면 정말 그곳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 시대 삶을 잘 보여주는 거울이다.

둘째, 루케가 아버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마치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듯이 흥미롭다. 마틸데가 사랑하는 피트를 놔두고 새로이 만난 남자에게 마음이 쏠리는 것을 보면 읽는이가 아슬아슬한 느낌이 들어서 불안하다..ㅋㅋ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에 얽힌 인생의 실타래는 과연 풀 수가 있을까?

셋째,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잘 나와 있다. 피트가 독일 노동자 농민이 왕정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참된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습, 할아버지가 마차를 끄는 마부 흑인 제리미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대하는 모습, 루케가 리자를 놔두고 마부 제레미의 흑백 혼혈인 딸(조카) 조지아에게 마음이 기우는 모습, 동부 산악지대인가에서 협곡에 부러진 다리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목수들이 중국인 노동자와 인디언을 대하는 모습 등에서 현대 독일인이 백인으로서 다른 나라 사람, 다른 인종을 바라보는 태도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와 같은 면에서 이 작품은 중학교 3학년쯤부터 고등학교 학생들이 읽을 만한 작품으로 생각된다. 물론 중학교 2학년 쯤이라도 책을 즐겨 읽는 아이라면 흥미를 가지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더구나 이 소설이 추리, 모험, 사춘기 연애, 역사 등 작가가 드러내려는 공간과 배경이 무척 넓다는 사실이 아이들에게 흥미를 끄는 요소가 될 것이다. 작품 마지막 부분에 아버지가 루케에게 남기는 말 속에서 작가가 청소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여행'이다. 며칠 전에 내가 읽은 '티베트 대상' 역시 여행과 모험을 소재로 하는, 아니 아버지를 찾아가는 모습마저 비슷한 동기를 가진 작품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초등 고학년이나 중학생 쯤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 중에는 '여행, 모험'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서 깨달은 것은 한국에서 중학교 3학년쯤 되면 혼자서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내가 기르는 내 아이도 과연 이렇게 여행을 떠나봐야 청소년기에 가장 소중한 경험을 놓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을 보면 우리가 사회 교과서에서 배운 '북유럽 도제 제도'가 자세히 나와 있다. 루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할아버지로 이어져 내리는 목수 제도가 이 작품에 나타나는 중요한 갈등의 배경이 되고 있다. 작품 첫 부분부터 루케가 목수가 되고 싶어하는 모습이 나오고 마지막까지 할아버지는 루케가 목수가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는 모습이 나온다. 도제가 되기 위하여는 어떠한 과정을 거치는지,도제 문화에서 독특한 과정은 무엇인지, 도제들은 무엇을 하며 직업을 꾸려나가는지, 그 인원은 몇이나 되는지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흔히 장인정신 하면 일본을 떠올리는데 그에 못지 않은 것이 독일 도제문화이다. 그러고 보니 독일 자동차와 일본 자동차가 세계를 양분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른다. 독일 도제 문화는 현재는 마이스터 제도로 정착되어 있다. 지금도 독일에서는 일반 사무직 노동자나 생산직 노동자나 임금이 똑같고, 도리어 대학을 나온 웬만한 중간 관리자보다 기능을 익히며 전문 지식을 쌓은 생산직 분야의 마이스터가 더 많은 소득을 올린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최근 한국에서 마이스터 고교를 세운다는 정책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독일 마이스터 제도를 본뜬 것이다. 한국에서 기술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독일에서 기술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점은 독일에서는 평범한 기술자나 회사원을 차별이 없이 똑같은 시선으로 대하고 똑같은 임금을 준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기술자를 천시할 뿐 아니라 임금도 사무직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것이 현실이다. 이와 같이 독일 도제문화는 민주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현대 독일을 이룩한 중요한 기둥의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