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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2012년 학교에서

안동1_ 권정생 선생님 집에서

by 호미랑 2008. 11. 14.

학생들 36명과 교사 나 37명이서 안동으로 문화답사를 다녀왔습니다. 학교에서 가지고 있는 예산으로
집행하는 사업입니다. 학생은 자원하는 녀석들로 뽑았습니다. 처음에는 30명 안팎으로 하려했는데, 기
대 밖으로 지원자가 많아서 관광버스 한 대에 해당하는 숫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ㅁ 쉬는토요일을 맞아서 버스 안에서 아이들은 즐겁습니다.




ㅁ 처음으로 가는 곳은 권정생 작가 생가입니다. 정확히는 태어난 곳이 아니라 선생님이 사시던 곳이지요.
특별히 이곳 생가는 선생님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라서 문화 답사 코스로 인기가 많습니다. 가난한
사람, 아이들, 작은 생명을 사랑하시며 직접 그 삶을 실천하시는 모습이 집과 그 주위에 그대로 나타나 있
습니다.  지금 아이들이 보고 있는 이 물통이 바로 선생님의 옷장입니다. 원래는 집안에 있던 것을 돌아가
신 뒤에 밖으로 내놓은 것입니다. 따로 옷장이 없어서 이 통 안에 넣고 필요할 때마다 옷을 꺼내 입으신 것
이지요.



ㅁ 방문입니다. 위에 선생님이 직접 써놓으신 문패가 달려 있습니다. 아이들이 소켓을 보더니 "아직
도 이런 소켓을 쓰는 분이 있네요." 합니다. 정말 예전에 우리가 흔히 쓰던 나이프 형 소켓이지요. 지
금은 누전차단기가 달려 있는 꼭지형 소켓을 쓰지요. 다른 사진에 있었는데 여기서는 사진이 짤려서
나이프 부분이 잘 안 보이는군요.



ㅁ 생가 전경입니다. 슬레이트 지붕에 흙으로 벽을 하였고 그 옆에 양철판을 대었습니다. 이 건물도 선생님
이 다니시던 교회 청년부에서 지어주신 것입니다. 벽을 두른 양철판은 종지기로 일하시던 교회가 새로 건물
을 지으면서 지붕을 덮고 있던 양철판을 떼어다가 비가 올 때 흙벽이 녹아서 흘러내리니까 그것을 막기 위
하여 붙인 것입니다. 강사 선생님 차영민 선생님 말에 따르면 이곳 마당에는 커다란 냄비솥이 하나 걸려 있
었고 정호경 신부님 등 친구분들이 찾아오실 때마다 그 냄비에다가 국수를 끓여서 간장 하나로 양념을 하시
어 끓여서 식사를 대접하시곤 하였다 합니다. 냄비는 선생님께서 작년 2007년 5월에 돌아가시고 이곳을 방
문한 사람들이 하도 냄비를 걷어차다 보니 망가질까 염려되어 지금은 방안에 넣어 두었다 합니다.



ㅁ 이곳은 선생님이 늘 가족처럼 밥도 같이 먹고, 때로 잠도 함께 자고, 선생님이 아파서 며칠을 끙끙대고
누워 움직이지조차 못하고 고생하시면 옆에서 지켜 주던 가장 가까운 친구 
멍멍이 '이뺑덕' 집입니다.



ㅁ 여기는 화장실이지요. 화장실 가는 곳에 보도블럭도 정호경 신부님등이 비올 때마다 불편하신 몸으로 온
발에 진흙을 묻히신 채로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깔아주신 것입니다.



ㅁ 이곳은 새 구멍입니다. 새집이지요. 구멍이 주먹  만하게 작은데 그것은 어린 새들이 이곳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린 새가 덩치가 커지면 다른 곳에 집을 얻고 또 다른 어린 새가 살 수 있도록
구멍을 아주 작게 만들었다 합니다.



ㅁ 선생님 생가 바로 뒤에 있는 이곳이 바로 선생님이 어머니가 그립고 마음과 몸이 힘들 때마다
올라가시던
빌뱅이 언덕입니다. 이곳에서 마을을 내려다 보며, 교회를 바라보며 어머니를 그리워
하셨다 합니다.




ㅁ 경북도교육청에서 도서관활성화 사업을 벌이는데 초등학교 경우는 자원봉사자 학부모 참여 사업을
벌입니다. 이에 따라 학부모님들이 학교도서관 일을 많이 돕는데 이런 학교에 교육청에서 사업지원비
를 내려보내 문학답사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날도 경주, 구미 두 곳에서 도서관도우미 어머니들
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동화작가이신 권정생  선생님 생가를 방문하였습니다. 강사 차영민 선생님이 우
리 학교 답사반과 경주 모 초등학교 도우미 엄마들 두 팀을 모아놓고 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ㅁ 예수님처럼 살고자 꿈꾸며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신 권정생 선생님이 종지기로 일하시던 교회가
멀리 보입니다.



ㅁ 권정생 선생님 유해를 유언에 따라 이곳에 뿌렸지요. 아이들은 하얀 가루를 보면서
신기해 하고 줍기도 합니다.




ㅁ 3학년 범수와 일당들입니다. 학교에서는 까불어도 여기에서는 사뭇 진지합니다.



ㅁ 아이들이 집앞 도랑에서 물고기들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ㅁ 권정생 선생님이 사시던 마을 이름이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입니다. 마을 이름에서처럼 우리 나라에
몇 개 안 되는 '전탑'이 그 당당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탑'이란 본래 석가모니의 유해를 모신 무
덤입니다. 따라서 초기 불교 유적인 인도 '산치대탑'은 둥그런 무덤 모양이지요. 불교가 전파되면서 석
가모니 유해(사리)가 중국으로 들어오고 이것을 모신 무덤이 중국식 집의 형태인 지붕을 갖게 되며 좀
더 기념물다운 형태로 높아집니다. 중국에서는 불교가 성행한 지역에 화강암 등 암석보다 흙이 더 구하
기 쉬운 재료였습니다. 이에 따라서 벽돌을 구워 탑을 만들고요, 이것이 삼국시대에 백제, 신라 등에 들
어오면서 초기 불교 유적으로 흙을 구워 만든 벽돌탑(전탑)이 유행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벽돌을 만
들기보다 돌조각을 쌓는 것이 좀더 편하므로 '모전탑'(벽돌과 비슷한 얇은 돌판으로 쌓은 탑)이 나오고
이 대표적인 유물이 '분황사모전탑'입니다. 결국은 탑 지붕을 한 개의 화강암으로 조각한 탑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가 흔히 보는 탑이라 합니다. 바로 이 '전탑'은 초기에 한반도에 불교가 전해지던 역
사를 증명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