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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2012년 학교에서

안동8_ 육사문학기념관에서

by 호미랑 2008. 11. 14.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옆에 있는 육사문학관에 간다. 육사는 퇴계 선생 후손으로 그의 오랜 할아버지가 다시 말하면
계 선생의 5대 후손 원대처사가 퇴계종택에서 버스로 5분 정도 거리가 되는 마을로 이사를 간다.  호를 원대라 한
까닭은 벼슬과 명리를 멀리하
고(遠) 산림 속에서 오로지 학문에 힘쓰고 덕을 쌓으며 살겠다는 뜻으로 지은 것이라 한
다. 처음 이곳은 말을 매어 멕여두던 곳이었다 한다. 이곳이 장사치들이 많이 다니던 곳으로 말이 많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한 까닭으로 '말을 메어 두는데'가 '말멘데'로 '말먼데'로 '먼데'로 하여 먼(遠)과 데(村)가 되어 '원촌'이라는 이름
이 생겼다 한다.
최근까지도 이곳에 살던 노인들은 이 마을을 먼데라 불렀다 한다. (인용: 맨 아래 링크)


ㅁ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려 먼데 동네를 바라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ㅁ 지금은 도로가 뚫려 고갯마루가 낮아졌지만 옛날 고개는 상당히 높은 곳에 있었다 한다. 이 고개를 넘어서는 순간
원촌 분지, 곧 먼데 하늘이 환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따라서 육사 시 '청포도'에서 '먼데 하늘'은 고유 명사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 강사 선생님 주장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곳에 낙동강이 굽이굽이 흘러가고 있고, 그 강물 휘돌아가는 곳
에 절벽이 있는데 그것이 칼선대라는 곳이다. 이 칼선대 꼭대기 부분은 사람 하나 겨우 올라설 만한 공간으로 육사 시
'절정'에서 '한 발 재겨
디딜 곳'이라는 구절이 유래되었다 한다. 실제로 육사는 어린 시절 그곳에 올라가서 놀기를 좋
아하였다 한다.



ㅁ 육사 시를 좋아하는 상현이가 육우당시비를 바라보며 감회에 젖어 있다.



ㅁ 차영민 선생님 강의. 오늘도 강의에 열공 중인 영신중 아이들. 이곳은 기념관에서 100여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육사선생 생가터이다. 안동댐을 건설하면서 생가터가 수몰될 것으로 예측하여 안동시내로 옮겼는데 실제로 수몰되
지는 않아서 이 자리만 남아 있는 것이다.



ㅁ 기념관에서 사진 자료 등을 살펴보는 아이들



ㅁ 육사는 여섯 형제가 있다. 형제 간 우애가 매우 두터워졌다 한다. 또한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길 당시에 모두
독립 운동에 참여하는데 이것은 모두 어머니 가르침 때문이라 한다. 육사 집안이 꽤 부유했던 것을 알 수 있는 사
진들이다. 명문가 후손 답게 인물도 좋아 당시 부르던 대로 '모던보이'였음을 알 수 있다.



ㅁ 육사의 친필 원고이다.



ㅁ 초중고 생들이 좋아하는 목판찍기 체험 코너도 있다.



ㅁ 기념관 개관을 축하하여 시인 김춘수 님이 축시를 썼다.



ㅁ 영상자료실에서 육사의 삶을 20분 정도로 정리하여 보여준다.



ㅁ 차영민 선생이 다시 한 번 육사 시가 갖는 의미를 설명한다.



ㅁ 퀴즈 상품으로 문화상품권을 내걸었는데 강사 선생님이 시를 외울 수 있느냐고 물어 아이들이 시를 외운다.



※ 아래 링크를 가보면 퇴계선생과 육사가 살던 원촌에 대한 정보를 참고할 수가 있다.
http://mail.swu.ac.kr/~cat/ae_tosanseowon_0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