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겸암정사이다. 유성룡이 서울로 관리로 나가고 고향은 형님 유운룡이 지키신다. 형님이 지은 건물로 유성룡이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이 들어서 벼슬을 마치고 고향에 내려와 글을 쓰던 곳이다. 여기에서 '징비록'을 지었다.
ㅁ 노란 은행나무 잎이 곱게 펼쳐진다.
ㅁ일정이 바빠서 자세히 둘러보지 못하고 성큼성큼 걸어간다. 건너편에 하회마을이 보인다.
ㅁ 서애 유성룡 선생님이 지으신 한시를 차영민 선생님이 설명하신다. 아이들이 진지하다. 그 시대 삶과 멋이 아이들
가슴 속에 한 줄기 바람이라도 지나갔을까.
ㅁ 겸암정사를 나오면 조금 넓은 공간이 나온다. 여기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얼핏 하회마을을 바라보는 공간 같
기도 하지만 여하튼 갈림길이다. 죽 절벽 허리를 타고 가면 옥연정사가 나온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길이다. 절벽 길을
타고 아래 낭떠러지 물길을 보면서 걷는 맛을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고 산길로 오르는 것인데 그렇
게 가면 부용대로 오르게 된다.
ㅁ 부용대로 오른다. 하지만 별로 긴장할 필요가 없다. 겸암정사에서 5~10분이면 오른다.
ㅁ 그렇게 오르면 바로 부용대다. 그리고 하회마을이 눈앞에 활짝 펼쳐진다.
ㅁ 4반 착한 소년 태화가 눈이 가늘어졌다. 긴장해서일까. 부용대에 올라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하회마을은 다 들
어오지만 낙동강 물굽이(河回)까지는 들어오지 않는다. (누군가 전문 사진가가 물고기눈깔 렌즈로 찍어서 올리면 좋
으련만 전문가용카메라 수십만대가 팔렸을 텐데, 그 렌즈는 수 천개가 팔렸을 텐데 아직 인터넷에 올라온 것을 본 적
이 없다.)
ㅁ 준병이가 겁도 없이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절벽 가까이 다가선다. "에구 무서라."
ㅁ 하회마을은 '물에 뜬 연꽃 형상(부용)'이라 한다. 조선시대 말에는 마을 한가운데 커다란 나무가 있고 그 아래에서
하회별신굿탈놀이를 했다 한다. 그런데 그 나무 동쪽에 아무개 구캐의원이 서쪽으로 아무개 회장님이 집을 지으셨다
한다. 그래서 지금은 나무가 담장에 포위가 되어버렸다. 부용대에서 바라볼 때 마을 한가운데 넓은 마당이 보여야 하
는데 돈있는 놈과 힘있는 놈이 땅을 차지해버려서 지금은 빽빽한 집들만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ㅁ 강사 선생님, 조금 어려운 풍수지리부터 하나하나 설명을 하신다. 14~16세 중딩 머스마들은 진지하다.